멘토가 우리 발표를 듣는 동안 나는 그 사람 표정만 봤다. 지적도 질문도 별로 없었다. 그냥 관심이 없어 보였는데, 최종 발표를 닷새 앞둔 날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점의 우리 프로젝트는 형편없었다. UI는 엉망이었고, 백엔드도 데이터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무엇보다 우리가 무슨 문제를 풀겠다는 건지 우리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했다.
다음 날 단톡에 "저희 이대로 가면 안 될 것 같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올라왔고, 긴급 소집이 걸렸다.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이 프로젝트에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전부 갈아엎기로 했는데, 사실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이 얘기를 하려면 2월로 돌아가야 한다.
할 게 없어서 시작했다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백엔드 공부를 한답시고 6개월을 방황했다. 그러다 올해 2월 초에 Cursor로 바이브 코딩이라는 걸 처음 접했다. 스프링 좀 깔짝거릴 줄 알던 나한테는 충격이었다.
개발판이 통째로 바뀌겠구나, 지금 늦으면 앞으로 큰일 나겠구나 싶어서 하루 12~14시간씩 Cursor랑 Claude를 붙잡고 이것저것 만들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니 지금 개발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들이 뭘 추구하는지 조금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무렵 같은 고민을 하던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하나 청년 금융인재 양성 프로젝트를 같이 해보자고 했다. 마침 할 것도 없었다. 세 명이던 팀에 내가 들어가면서 네 명이 됐다.
솔직히 동기는 두 가지였다. 이력서에 적을 타이틀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팀 프로젝트라면 질색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번엔 그걸 한번 넘어보고 싶었다.
조용하고 남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라 팀플 자체가 무서웠고, 동아리든 수업 팀플이든 결과가 좋았던 적도 없었다.
남들이 준비 안 한 걸 준비해 갔다
중간에 합류하는 처지라 첫 회의에 뭘 들고 갈지 고민했다. 팀원들이 준비하지 않은 걸 해 가면 어떨까 싶어서 이 대회의 역대 수상작과 채점 기준을 뒤졌다.
실현가능성 30%, 사업성 30%, 참신성 30%, 자료완결성 10%. 수상작들을 보다 보니 감이 왔다. 거창한 문제보다 작아도 확실하게 풀 수 있는 문제, 거기에 하나은행 사업이랑 자연스럽게 엮이는 그림이면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낸 아이디어가 Student Start Mode였다. 외국인 유학생이 한국에 와서 처음 90일 동안 계좌, ARC, 휴대폰 개통처럼 서로 꼬여 있는 절차를 어떤 순서로 풀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AI 금융 온보딩 서비스.
유학생의 금융 문제를 풀면 금융 포용, ESG까지 자연스럽게 걸린다. "버스만 타지 말고 자기주장 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고 들어온 팀이었는데, 그 다짐이 처음으로 결과로 이어진 순간이었다.
당시 안내받기로는 220팀 남짓이 지원해서 20팀을 뽑는 예선이었다. 4월에 결과가 났는데, 기대 안 하고 있다가 붙었다.
기뻤다기보다 당황스러웠다. 이런 데서 좋은 소식을 받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4월 20일 명동 하나금융 사옥에서 열린 본선까지 통과해서, 역시 당시 안내 기준으로 최종 13팀에 들었다.
본선 발표는 팀원이 했고, 나는 자료조사와 시연 영상을 맡았다. 발표 시간에 맞춰서 58초, 65초, 78초, 88초짜리 영상을 몇 번이고 다시 만들고, 효과음 넣고, 화면 전환 타이밍을 조정했다.
무대에서는 한마디도 안 했다. 대신 객석에서 다른 팀 발표를 하나하나 봤다. 세상에 발표 잘하는 사람 진짜 많구나. 같은 주제를 저렇게도 접근하는구나.
에라 모르겠다
1박 2일 OT를 갔다. 모르는 사람 여럿이랑 얘기하는 것도, 레크리에이션도 진짜 싫어한다.
그런데 이번엔 도망칠 데가 없어서, 에라 모르겠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나 다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 점점 재밌어졌다.
조별 활동을 아예 모르는 사람 여섯이서 했는데, 마주칠 때마다 먼저 인사하려고 했고, 예전 같으면 아이디어가 있어도 입 꾹 다물고 있었을 토론에서 생각날 때마다 툭툭 던져봤다.
사람들이 내 말을 잘 들어줬다. 나는 말을 매끄럽게 못하면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까 봐 피해온 건데, 그 두려움의 대부분은 상대가 아니라 내 안에서 만든 거였다. 이제 그 생각은 떠나보내야겠다고, 그때 처음 생각했다.
비즈니스 매너 교육에서 배운 것도 아직 써먹고 있다. 식당에서 나오면서 "잘 먹었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것, 아는 사람이 보이면 기다리지 말고 먼저 가서 인사하는 것. 사소한데, 이런 게 쌓이니까 사람 대하는 게 조금씩 덜 무서워졌다.
5월부터 7월까지 주말마다 교육이 이어졌다. AI 강의가 대부분이었는데 그 무렵 내가 매일 붙잡고 있던 것과 겹쳐서, 나한테 새로운 건 많지 않았다.
대신 매주 하는 팀 회의에서 회의 자료 정리하는 법, 조리 있게 말하는 법, 남의 의견에 반박하고 보충하는 법을 배웠다. 평생 할 팀플은 이 기간에 다 해본 것 같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이렇게 배운 걸 정작 우리 팀 안에서는 못 썼다.
제자리에서 보낸 3개월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역할은 나름 나눠져 있었다. 나는 프론트와 백엔드, 한 명은 데이터, 한 명은 기획과 발표, 한 명은 자료조사. 그런데 개발자 네 명이 모인 팀에, 방향을 정해줄 사람이 없었다.
나는 예선을 통과한 Student Start Mode를 계속 밀고 싶었다. 한 팀원은 유학생보다 한국 사회초년생이 실제로 겪는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의견이 강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쪽으로 갈지 결정할 방법이 우리한텐 없었다. 회의는 매주 했지만 정해지는 건 없었고, 티는 안 냈지만 서로 감정이 상해갔고, 새 주제에서 마땅한 아이디어를 찾지 못한 채 3개월이 갔다.
다른 팀들이 앞으로 가는 동안 우리는 제자리에서 주제 탓만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뭔가 만들고는 있긴 했다. 홈 화면, 또래 비교, AI 코칭, 미션, 소비 기록, 생일펀드, 포인트, 심지어 RPG 레이드까지. 회의가 겉돌수록 기능만 계속 늘어났다.
그런데 "그래서 이 앱이 누구의 무슨 문제를 푸는 건데?"라는 질문에는 우리 중 누구도 답을 못 했다. 멘토가 아무 반응이 없었던 게,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 와서 제일 후회하는 건 그 팀원도, 리더가 없던 상황도 아니다. 내가 내 결정권을 남한테 넘긴 거다. 내 의견에 자신이 없으니까 판단을 미뤘고, 누가 결론을 내려주기를 기다렸다.
그래 놓고 결과가 나쁘면? 아무한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나는 결정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았으니까. 이게 이 프로그램 전체에서 가장 비싸게 배운 교훈이다.
마지막 닷새
그리고 그 멘토링이 있었다. 남은 시간은 닷새. 심지어 같은 7월에 TECH4GOOD 해커톤에서 밤을 새우고 온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백엔드고 데이터고 다 살릴 시간은 없었다. 심사위원한테 보여줄 화면이 제일 급하니까, 프론트만이라도 제대로 만들자. 프론트는 내가 맡고, PPT는 다 같이 붙기로 했다.
첫날은 친구랑 카페에서 손으로 와이어프레임을 그렸다. 종이에 그린 화면을 그대로 옮기는 게 목표였다.
평소 쓰던 Codex로 프론트를 뽑아봤는데 진짜 안 예뻤다. 새로 나온 Kimi K3도 써봤다. 마찬가지였다. 사나흘 안에 끝내야 하는데 이 퀄리티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30만원짜리 Claude 플랜을 질렀다. 학생한테 30만원은 큰돈인데, 그 순간엔 그게 제일 싼 선택지였다. 디자인은 Claude의 Fable이 확실히 나았고, 프론트 대부분을 그걸로 구현했다.
그다음 사흘은 카페와 찜질방을 오가면서 보냈다. 사흘 내내 잔 시간을 다 합쳐서 두 시간이었고, 밥은 하루 한 끼였다. 그러면서 화면을 만들고 고치고 다시 만들었다.
커밋이 300개 넘게 쌓였다. SNS 레퍼런스랑 금융 앱들을 뒤져가며 "또래의 금융 생활을 구경하다가 나도 시작하게 되는" 느낌이 나올 때까지 고쳤다.
제일 무서웠던 건 잠이 아니었다. 남들이 3개월 동안 만든 걸 나흘 만에 따라잡을 수 있냐, 만들어도 만족할 만한 게 나오긴 하냐는 질문이었다. 그래도 여기서 접으면 나뿐 아니라 팀원들이 보낸 3~4개월까지 전부 헛것이 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렇게 나온 게 FinMate다. 금융 관리를 미루는 20대에게 또래의 소비·저축·투자 이야기를 짧은 스토리로 보여주고, AI가 고민을 작은 미션으로 바꿔서 첫 행동을 하게 만드는 서비스.
설문 97명, 홈 화면 콘셉트 테스트 108명, 카드 이용 데이터 약 65GB를 마이데이터 형태로 가공한 가상 사용자까지, 닷새치고는 채울 수 있는 건 다 채웠다.


상은 못 받았다
최종 발표는 하나은행 본점에서 했다. 시연은 전부 돌아갔다. 발표는 이번에도 팀원이 맡았고, 심사위원들은 마이데이터를 어떻게 생성했는지, 참고한 레퍼런스가 있는지, 개인정보 문제는 어떻게 풀 건지를 물었다. 우리 팀이 대답하는 걸 지켜보면서 "어, 나쁘지 않은데?"라는 생각까지 했다.
상은 못 받았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우리 문제 정의는 나쁘지 않았지만 뻔했고, 솔루션도 심사위원을 설득할 만큼 날카롭고 디테일하지 못했다.
다른 팀들은 본선 아이디어를 3개월 내내 디벨롭해서 왔다. 우리는 그 3개월을 버렸다. "나흘 만에 만든 것치고 잘했다"는 말은 위로가 안 된다. 우리한테도 똑같이 3개월이 주어졌었으니까, 그게 제일 아쉽다.
그래도 이 프로그램을 후회하지 않는다. 시작할 때의 나는 팀플이 무서워서 피하던 사람이었고, 끝날 때의 나는 먼저 인사하고, 회의에서 의견을 내고, 마감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사람이 됐다.
상은 없었지만 나라는 인간은 한 단계 나아갔다. 그거면 남는 장사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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