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청년 금융인재 프로젝트에서도, TECH4GOOD 해커톤에서도 상을 못 받았고, 두 번 다 빈손이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지금, 억울하거나 허무하지가 않다. 넉 달 동안 나한테 일어난 일을 늘어놓고 보면 오히려 이득 본 쪽에 가깝다.
그 계산을 한번 적어보려고 한다. 나 같은 대학생, 그러니까 팀플이 무섭고 남 눈치 보느라 손을 못 드는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넉 달 전의 나
나는 팀 프로젝트를 질색했다. 조용하고 남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라,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말을 매끄럽게 못하면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디어가 있어도 입을 다물었고, 결정은 남에게 미뤘고, 결과가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상태로 이력서에 쓸 타이틀이나 하나 얻자는 마음 반, 이번엔 좀 달라져보자는 마음 반으로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바뀐 건 성격이 아니라 행동이었다
넉 달 뒤의 나는 처음 본 사람 일곱 명이 모인 해커톤 팀에서 개발 기획을 먼저 정리하고 팀 개발을 조율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성격이 바뀐 건 아니다. 지금도 낯을 가리고 지금도 눈치를 본다.
달라진 건 행동이고, 그 계기는 거창하지 않았다. OT 레크리에이션 자리에서 "에라 모르겠다, 최선이나 다하자" 하고 한 번 놓아본 것, 조별 토론에서 덜 다듬어진 의견을 툭 던져봤는데 사람들이 그냥 잘 들어주더라는 것, 딱 그 정도였다.
거기서 알았다. 내가 두려워한 시선의 대부분은 상대의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것이었다는 걸.
그리고 사람이 남았다
행동이 바뀌니까 남는 것도 달라졌다.
하나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다른 팀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했다. 같이 밥을 먹고, 각자 뭘 하고 있는지 서로 정보를 나눴다. 주고받은 게 실제로 도움이 됐다. 넉 달 전의 나라면 그런 자리는 어떻게든 피했을 거다.
해커톤은 이틀뿐이었는데도 인스타와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리고 최종 성과회에서, 같이 뛰었던 팀원이 상을 받았다.
나는 빈손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축하한다고 말하는 게 어렵지 않았고, 아쉽긴 해도 웃으면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상을 못 받은 자리를 웃으면서 나왔다는 게 나한테는 좀 새로웠다.
돈 쓰는 기준도 바뀌었다
바뀐 게 하나 더 있는데, 이건 좀 다른 종류다. 마감 닷새 전 프론트를 다시 만들 때 나는 30만원짜리 AI 플랜을 결제했다. 학생한테 30만원은 망설일 수밖에 없는 돈이고, 실제로 주변에서는 다들 주저한다.
나는 반대로 계산했다. 내 한 달이 30만원보다 싸면 그게 더 문제 아닌가. 도구가 시간을 벌어주면, 그 시간을 30만원보다 가치 있게 쓰는 건 내 몫이다.
물론 이건 "다들 결제해라"는 말이 아니다. 결제한 만큼 시간을 결과로 바꿔야 한다는 책임까지 같이 사는 거다. 나는 그 며칠 동안 300개 넘는 커밋으로 그 값을 치렀다고 생각한다.
예전 같으면 그 앞에서 며칠을 재다가 결국 안 샀을 거다. 결정을 미루는 게 그때는 편했으니까.
그래서 다음 팀에서는
제일 크게 후회하는 건 하나 프로젝트 초반에 내 결정권을 남한테 넘긴 것인데, 그 얘기는 거기에 적었다. 여기서는 그래서 다음엔 어떻게 하겠다는 것만 남긴다. 나를 위한 메모지만, 비슷한 사람에게도 쓸모 있을 것 같아 적어둔다.
- 역할을 맡으면 그 역할은 끝까지 내가 책임진다. 애매하게 걸쳐두지 않는다.
- 의견은 덜 완성됐어도 낸다. 틀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 반박할 땐 비판만 하지 않고 더 나은 대안을 같이 가져간다.
-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면 침묵하는 대신 사전 조사를 해서 근거를 들고 간다.
- 주제를 정했으면 단점 찾기를 멈추고 일단 믿고 디벨롭한다. 불신은 팀을 제자리에 세운다.
특히 마지막 줄. 우리 팀이 3개월을 잃은 건 아이디어가 없어서가 아니라, 정한 주제의 단점만 계속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주제를 고르는 것보다 고른 주제를 좋게 만드는 게 훨씬 생산적이라는 걸 시간을 다 쓰고 나서야 알았다.
예전의 나 같은 사람에게
복학까지 한 달 남짓 남았다. 그 전에 데모가 아니라 실제 서비스를 만들어서 배포해보는 게 목표다. GitHub 스타도 받아보고 싶고, 수익도 내보고 싶다. 되면 그것대로, 안 되면 또 회고 쓸 거리가 생기는 거고.
혹시 예전의 나처럼, 낯선 사람들과 팀 하는 게 무서워서 대외활동 지원 버튼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잘하는 사람 걸 창피해하지 말고 따라 배워라. 이번 넉 달 동안 확실해진 건, 남 눈치 봐가면서 행동해봤자 나한테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거다.
발전하고 싶으면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틀려도 된다. 틀리면 거기서 배우는 게 있고, 그게 당신이 한 단계 성장하는 시간이 된다.
상 하나 없이 끝난 넉 달을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웃길 수도 있는데, 그래서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건 수상 소감이 아니라 계산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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