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나를 만든 건 학교 수업이 아니었다. 휴학하고 오픈소스에 PR을 올리고, AI 에이전트를 붙잡고, 하나 청년 금융인재 프로젝트에서 낯선 사람들과 부딪힌 1년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지 학점하고는 별 상관이 없었다.
이쯤 되면 "그래서 학교 다닐 필요 없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 같지만 정반대다. 한 달 뒤에 복학하는데, 그 전에 인정하고 갈 게 하나 있어서 적는다.
2년 동안 내가 학교에서 한 것
수업 듣고, 동아리 하나 하고, 집에 갔다. 2년 동안 내가 학교에서 한 건 그게 전부였다.
동아리는 1년을 활동했는데, 끝나고 보니 같은 조 사람들 말고는 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같은 기수에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그랬다. 내가 적극적으로 말을 붙이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였고, 지금 그게 제일 후회된다. 그 사람들과 친해졌다면 그 1년은 아마 완전히 다른 1년이었을 거다.
더 정확히 말하면 후회되는 건 관계가 아니라 그때의 나다. 나는 지금 이대로가 편하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편안함에 취해 있었다는 말이 맞다.
3학년 1학기엔 그마저도 놓아버렸다. 텅 빈 학교생활이라고 예전에 쓴 적이 있는데, 그 학기의 나는 강의실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앉아 있다가 수업이 끝나면 집에 왔다. 꿈도 의욕도 없었고 수업은 지루해서 듣기 싫었다.
그런 상태의 나에게 학교가 쓸모없었던 건 맞다. 그런데 그게 학교 탓이었나 하면 아니다. 나는 학교라는 시스템을 눈앞에 두고도 쓸 줄을 몰랐다. 의욕이 없고 이 공간을 어떻게 써먹는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세상 어떤 좋은 학교도 쓸모가 없다.
받는 법은 학교 밖에서 배웠다
그 방법을 나는 휴학하고 나서, 그것도 개발이 아니라 사람 쪽에서 배웠다.
하나 프로젝트와 해커톤이 그랬다.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먼저 인사했고, 회의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의견을 냈고, 마감 앞에서 밤을 새웠고, 둘 다 빈손으로 끝났다.
그런데 그 넉 달에 내가 얻은 건 결과물이 아니었다. 남들 앞에서 틀려도 별일 안 생긴다는 것, 먼저 말을 걸면 대체로 받아준다는 것, 내가 손을 들어야 뭐라도 굴러간다는 것.
이건 강의실에서는 안 배워지는 종류였고, 그렇다고 강의실에서 못 쓸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학교가 다시 보였다
대학은 사람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또래가, 선배가, 교수가, 나와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2년 동안 나는 그 사람들 옆을 그냥 지나쳤다. 공간이 없었던 게 아니라 쓸 줄 몰랐던 거다.
지금은 그게 아깝다. 이런 밀도로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은 인생에 한 번뿐인데, 나는 그걸 배경화면처럼 지나쳤다. AI가 나를 개발자로 만들어줬어도 이 부분은 못 만들어준다.
한 달 뒤에 할 것
예전엔 학교가 나에게 뭘 해주기를 기다렸는데, 이번엔 내가 먼저 가서 받아올 생각이다.
- 성적. 예전엔 지루해서 안 들었다. 이번엔 아등바등할 거다. 잘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책임지는 사람이 되기로 해서다.
- 학부연구생. 주변에서 해보라고 한다. 솔직히 아직 고민 중인데, 예전 같으면 고민조차 안 했을 일을 저울에 올려두고 있다는 것 자체가 달라진 점이다.
- 동아리. 최소 하나는 하고, 에브리타임 뒤지다가 끌리는 데가 있으면 들어간다.
- 교수님 찾아가기. 수업을 듣다가 이루고 싶은 목표나 궁금한 게 생기면 찾아간다. 예전의 나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가장 어려운 건 마지막이다. 나는 사람 만나는 게 무서웠고 지금도 무섭다. 넉 달 동안 겪어보고도 그렇다. 다만 무서운 것과 못 하는 것이 다르다는 건 이제 안다.
늦게 알았다
혹시 지금 학교가 쓸모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만 의심해봐도 좋겠다. 정말 학교가 쓸모없는 건지, 아니면 내가 이 한 번뿐인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나는 2년을 흘려보내고, 그 방법을 배우러 학교 밖으로 한 바퀴 돌고 나서야 알았다. 당신은 나보다 빨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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