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1학기, 나는 강의실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같이 다니던 사람들은 다 휴학했거나 졸업한 뒤였다. 수업을 듣고, 아무하고도 말을 안 섞고, 집에 왔다. 그게 한 학기 내내 반복됐다. 강의실에 앉아 있으면 이대로 가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매일 들었고, 자괴감이 쌓였다. 개발이든 학교든 뭐 하나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1학기가 끝나자마자 휴학계를 냈고, 그 1년이 지금 이 글이다.
텅 빈 2학년
2024년, 2학년 때 나는 멋쟁이 사자처럼 12기에 백엔드 파트로 들어가 1년을 활동했다. 학교생활에 동아리에, 겉보기엔 열심히 사는 대학생이었다. 그런데 1년을 보내고 남은 감정은 이상하게도 공허함이었다.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어디서든 끌려다니기만 했다. 내가 뭘 판단해서 기여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정한 걸 따라가는 게 전부였다. 활동은 많은데 나한테 남는 건 없는 것 같았고, 학교생활이 통째로 텅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 실력은 없는데 개발에 시간은 쓰니까 성적은 계속 떨어졌다.
2학년이 끝나갈 무렵부터 생각했다. 차라리 휴학을 빨리 하고 개발 공부를 좀 한 다음에 복학하면, 그때는 더 가치 있는 학교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고민을 안고 3학년 1학기를 다녔는데, 동아리에서의 안 좋은 기억 때문인지 뭘 하고 싶은 의욕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아무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고, 수업만 듣고 집에 갔다. 그 반년이 결국 나를 휴학으로 밀어냈다.
대부분의 휴학생이 그렇듯
휴학하면서 세운 계획은 흔했다. 알고리즘 공부하고, 백엔드 지망이니까 김영한 스프링 강의 열심히 듣고, 운동도 하고. 그리고 처음 얼마간은 진짜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휴학생이 그렇듯, 그 생활은 잘 안 지켜졌다. 알고리즘도 스프링도 운동도, 처음의 의욕은 점점 나태로 바뀌어 갔다. 지나고 나서 솔직하게 말하면, 2025년은 거의 전부 힘들었다. 남들과 비교하면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고, 나 자신에게서 단점밖에 발견하지 못하는 해였다.
커서로 만든 포트폴리오
그렇게 공부를 깨작거리던 어느 날, 바이브 코딩이라는 걸 알게 됐다.
사실 예전부터 이름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옛날에 GPT에서 코덱스를 써봤을 때 결과가 정말 최악이었어서, "그 정도인가" 하고 접어뒀었다. 그러다 다시 보니 사람들이 커서는 공부용으로, 클로드 같은 건 실무용으로 많이 쓴다고 하길래, 나도 커서를 한번 써봤다.
그걸로 백엔드 포트폴리오를 하나 만들어봤는데, 결과가 말도 안 되게 잘 나왔다. 내가 백엔드를 그렇게 잘 아는 것도 아닌데. 그 순간부터 개발이 너무 재밌어졌다.
외출할 때도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개발했고, 만드는 양이 늘어나니까 토큰이 부족해졌다. 이왕 결제하는 김에 클로드로 넘어갔고, 맥스 5배 플랜으로 개발하다가, 어느 날 카카오가 코덱스 20배 모델을 10분의 1 값에 뿌리길래 그걸로 5개월 치를 사서 개발했다.
돌아보면 여기가 1년의 변곡점이었다. 스프링 강의를 몇 배속으로 넘기며 조급해하던 내가, 처음으로 뭔가를 직접 만들어내는 재미에 빠진 순간이었으니까.
하나 프로젝트, 그리고 해커톤
그렇게 개발에 빠져 있던 중에 하나 청년 금융인재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팀 프로젝트를 질색하던 내가 아이디어를 내고, 3개월을 날리고, 마감 며칠 전에 프로젝트를 통째로 갈아엎은 이야기는 따로 적었다.
그 사이에 낀 TECH4GOOD 해커톤에서 밤을 새우며 배운 것도, 두 번 다 상을 못 받고 얻은 것도 마찬가지다.
이 1년만 놓고 보면 그 넉 달이 어디에 끼어 있었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전까지 내 1년은 전부 혼자였다. 방에서 커서를 붙잡고, 혼자 만들고, 혼자 잘 나왔다고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그 넉 달에 사람이 끼어들었다. 의견이 갈리는 회의가 있었고, 내가 결정을 미루면 팀 전체가 멈췄고, 마감 앞에서 나 하나 도망치면 남의 몇 달이 같이 날아가는 자리에 있었다. 혼자 개발하면서는 절대 안 생겼을 종류의 압력이다.
반년 전 강의실에서 아무하고도 말을 안 섞던 내가, 처음 만난 사람들과 팀을 이뤄 무대 뒤에서 개발을 굴리고 있었다. 그게 나한테는 성적이나 수상보다 큰 사건이었다.
PR은 날리면 끝인 줄 알았다
개발이 손에 붙으면서 오픈소스에 눈이 갔다. 예전에 오픈소스 기여를 하면 포트폴리오에 정말 좋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고, AI 에이전트를 쓰면 나 같은 사람도 오픈소스 기여가 꿈이 아니지 않을까 싶었다.
첫 PR은 html-react-parser라는 라이브러리에 올렸다. DOM 요소의 instanceof 체크가 깨지는 버그를 고치는 거였다.
나는 PR은 코드 올리면 끝나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메인테이너가 "이 로직은 여기로 옮겨라", "Element 노드만 대상으로 좁혀라" 하고 리뷰를 남겼고, 그 요청을 따라 코드를 고치고 회귀 테스트까지 붙였다.
PR은 메인테이너가 원하는 걸 미리 파악하고, 대화하면서 같이 완성해 가는 거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머지가 됐을 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생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개발자가 된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았다.
처음엔 깃허브 생태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지만, 커서와 클로드와 코덱스로 개발하면서 코드만 치는 게 아니라 그 바깥의 것들(개발자들이 어디서 활동하고 뭘 원하는지)을 훨씬 많이 접하게 됐고, 그게 기여에도 그대로 도움이 됐다.
불편해서 만든 도구
오픈소스에 PR을 올리다 보니, PR을 자동으로 검사하는 봇을 자주 봤다. 검사에 시간이 오래 걸려 한참을 기다렸는데 결국 close되면 허무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사용자가 원하지 않을 PR을 미리 걸러주는 도구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만든 게 mergewarden이다. AI가 생성한 PR이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는지, 건드리면 안 되는 파일을 손대지 않았는지 같은 걸 검사하는 도구다.
커밋이 130개 가까이 쌓였고, 내가 깃허브를 하면서 받은 스타 중 제일 많은 스타를 받았다. 스타 수야 대단한 건 아니지만, 내가 겪은 불편을 내가 도구로 만들어 풀었다는 게 나한테는 컸다.
한 학기만 빨랐어도, 늦었어도
이제 곧 복학한다.
1년 전, 휴학을 막 결정한 나에게 지금 한마디 한다면, 타이밍 정말 잘 잡았다고 말하고 싶다. 한 학기만 빨리 했으면 AI 에이전트로 뭔가 이룬 것 하나 없이 복학했을 거고, 한 학기만 늦게 했으면 학교생활 반년을 더 날린 데다 이미 판이 다 바뀐 뒤였을 테니까. 하필 이 1년이었기 때문에 잡을 수 있던 것들이 있었다.
2025년은 힘들었다. 남들과 비교하며 내 단점만 세던 해였다. 그런데 그 끝에서 나는 개발자로서 자신감이 붙었다.
1년 전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고, 취업은 어떻게 하고 팀플은 또 어떻게 하나 걱정만 했는데, 지금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슨 역경이 와도 지난 1년의 경험으로 넘길 수 있을 것 같고, 제일 무서웠던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도 이제는 두렵지 않다.
애초에 휴학하며 세운 계획은 "실력을 쌓아서 더 가치 있는 학교생활을 하자"였다. 알고리즘도 스프링도 계획대로는 안 됐지만, 그 계획이 노렸던 것(텅 비지 않은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나)은 결국 손에 넣은 것 같다.
복학한 강의실에는 여전히 아는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번엔 먼저 말을 걸 수 있을 것 같다.
'팀과 성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학교를 쓸 줄 몰랐다 - 복학을 한 달 앞두고 (0) | 2026.07.25 |
|---|